ホウケイのクジラ釣り!(흥부의 성의 고래사냥)

ホウケイじゃないのにホウケイと呼ばれる!

유튜브에서 100% 강삭 되는 댓글들!

2023-08-08 20:42:00 | 나의 글(日記)

1,

IMF의 숨은 진실

~◆ㅎㅇ들의 영웅  ~◆ㅎㅇ 슨상 제갈대중이 32가. 쥐를 대통령으로 만들려 금전적 지원을 비롯 많은  ~◆ㅎㅇ들과  대한민국 반역 세력인 운동권( 85%가 ~◆ㅎㅇ)들에게 진 빚은 금전으로는 환산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 어마 했었다.

그렇다고 처,자식 외에는 철저한 자린고비 입장으로서 금전으로는 값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그 많은 인력에 요직으로 마음대로 다 채용 해 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모른 척 스리슬쩍 넘어 갔다가는 자신의 약점을 쥐고 목줄을 잡고 있는  대한민국 반역 세력인 운동권( 85%가 ~◆ㅎㅇ) 32들에게 목숨까지 위험 할 수 있는데 이 상황을 어떡해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궁리 하며 측근 ~◆ㅎㅇ들과 함께 묘책을 찾다 나온 것이 밑판 깔아 논  
~◆세탁ㅎㅇ 푼수 영삼이 32의 정책을 이용 하여 IMF 상황을 유도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였다.

 

   ~◆ㅎㅇ 슨상 제갈대중에게 비 협조적였던 대기업들의 부도를 맞게 조장하여 자신을 도와 준 기업들과(대부분   ~◆ㅎㅇ나 Zi나<시나징 = 47 >) Zi나국과 긴밀한 관계를 위해서 두 부류를 대상으로 헐값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금전 ,개인사 등으로 제일 큰 세력에게의 보은 술책

 

두번째의 술책이 2차 금융의 활성화와 강원도 카지노 관광 단지 조성으로 전국에 퍼진   ~◆ㅎㅇ 사채업자들과   ~◆ㅎㅇ 조폭들에 대한 보은 정책!

 

마지막으로 3번째가 전 국민 금 모으기 술책을 이용하여 도와준 주변   ~◆ㅎㅇ들의 보은 지급과  자신의 미래 정치 자금으로 축적해 놓았던 것이다.

 

이 사실은 지금은   ~◆ㅎㅇ 천국 세상이라 밝혀지기가 힘들지만 훗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 가게 되면 전부 밝혀질 사실이다.

---------------

때똥넘에서 대통령으로 수정해서 올리는데도 무조건 강삭!

 

IMF 상황을 잘 상기 해 보길 권장합니다. 절대 지어 낸 이야기도 아니고 망상의 글도  아닌 본인이 목격했었던 일들과 IMF 상황을 비교했을 때 아구가 딱 들어 맞는 사실임을 장담 합니다.

 

2,

요즘

" 한글은 세종대왕이 없었어도 신하들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개발할수 있었다"라고

울부짖어 대는 ∼◆ㅎㅇ32들이 안보이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어떻게 하든 깍아 내리려

"경제개발 계획은 전 정부 부터 있어왔던 계획으로 누가 했어도 지금과 같은 경제 개발을 이루어 냈을 것이다" 라

울부짖어대던 ∼◆ㅎㅇ32들이 요즘 한 마리도 안보이네?

 

하기사 ∼◆ㅎㅇ32들은 세계가 인정할 정도의 기상천외한 능력을 지닌 어류들이니

∼◆ㅎㅇ32들은 애Mi애Bi가 없어도 산파들의 노력만으로 이 세상에 기Jil러 나올수 있거나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해도 누구나 다 1등을 할수 있다는 ∼◆ㅎㅇ32들만의 전지전능한 능력자들이니..!

 

아!참! ∼◆ㅎㅇ32들에겐 세계가 인정하는

∼◆ㅎㅇ32들 누구라 할것없이 ∼◆ㅎㅇ32들 외에는누구도 못 쫓아 가는 다같이 1등하고

"당한 사람이 나쁘고 바보"라 울부짖어 대는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었쥐!

" 사기 "

 

3,

유감스럽게도 그건 애당초 물건너 간 상황으로 힘들것 같네요.

1990년대 초반부터 대한민국 반역자들인 운동권 출신들이 정권을 잡기 시작 하면서 대한민국 모든곳을 장악 하고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일궈낸 모든 근간을 없애고 반역집단 들이 추구하는 이념 사고 방식을주입하려 노력한 결과

약 6~70%는 성공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경험한 노령층 세대들이 살아 계시기에 한번에 뒤집을수 없어 노인들을 멸시하는 세대 갈등 이간질 술법과 남녀 관계 이간질과 성평등 술책등도 모자라

2000년대 부터는 저지능 새대가리 쥐대가리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술책을 펼치며

애국 보수 인물들을 갖은 허위 공작을 동원하며 하나,둘 정가에서 몰아내는 공작을 펼친 결과

저지능 새대가리 쥐대가리 국민들은 보수,보수 외쳐 되지만 실상은 현재 순수 애국 보수 인물들은 한 명도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께서 기술 양성과 인재 발굴을 위해 닦아 놓은 모든 시스템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상황으로

현재 대한민국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는 180% 다르게 대한민국 반역자 들인 운동권들의 뜻대로 한단계,한단계씩

두 분 대통령들께서 일궈 놓은 모든것들이 하나씩 무너져 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모든것을 한번에 무너트리게 되면 아무리 저 지능 국민들이라 해도 한번에 알아 차리게 되어 격한 국민 저항이 생겨

반역자들이 추구하는 세상이 실패 할수 있기에 오랜 세월 한단계,한단계씩 야금,야금 무너트려 오며

거진 6~70%의 성공 단계에 이르르게 된것입니다.

 

∼◆세탁ㅎㅇ 해골찬이 대선 때 마다 자신있게 울부짖어 대던 소리를 잘 생각 해 보면

위에 적은 내용들이 잘 이해가 갈것입니다.

(쥐박이 대선 때  : 다음 정권에서 절대 보수 정권은 없을것이다.

현 윤두창 대선 때  :  앞으로 20년 이상은 민쥐화  세력이 정권을 장악 해 나갈것이다.  ,후 에 50년으로 변경>)

 

 

아마도 20년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일궈논 모든것은 사라지고

빠르면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사라질수도 있고 아니면 ∼◆ㅎㅇ들만을 위한 새로운 세상이 될것입니다

(20년 후가 되면194~50년대 세대들은 거의 사라져 가고 그 후 세대부터는 전교조에 세뇌된 저능아 세대들이 많아지므로)

 

대한민국이 살아 나려면 현재 대한민국 반역 운동권들에 장악된 모든곳에서 반역자들의 퇴출과 처형이 이루어 져야 하는데

그러기엔 저지능 국민들이 정신 차리고 앞장서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어져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유는

그런 저지능 새대가리 쥐대가리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한 술책으로 치매 재앙이 들어 서며

각종 언론 방송과 유톱 채널을 통한 마약과도 같은 "국뽕" 술책을 펼친 덕분으로 저능아들이 깨어나기는

쉽지 않으리라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반역자 운동권들의 약 80%가 ∼◆ㅎㅇ)

 

4,

대한민국 대통령들 중 유일하게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한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한반도 역사 이례 최고의 반역자 운동권 숨은 실세
 ~◆세탁 ㅎㅇ   해골찬!(이해찬)

대한민국 최고의 반역자 들
 ~◆ ㅎㅇ 근Chin4생아 슨상 제갈대중!!!!!
 ~◆세탁 ㅎㅇ    Chub의 자식 삼푼이 김영삼!
~◆세탁 ㅎㅇ     운지! 노알라(노무현)
 ~◆세탁 ㅎㅇ   삶은소대가리 치매 재앙(문재인)


한반도 역사 이례 최고의 반역자 ~◆ ㅎㅇ혈통  ~◆세탁 ㅎㅇ김일성(김성주)!

 

5,

대한민국 모든 만악의 근원 ∼◆홍어

∼◆홍어는 한반도 역사이래 대한민국에 전연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사욕만을 탐하며 헤아릴 수 없을만큼 국가를 위태롭게 해오는 종족이다.
(북괴뢰 김일성 3대 : ∼◆홍어혈통! ∼◆세탁홍어)

미래의 세대를 위하고 대한민국의 빠른통일과 안정을 위하여
∼◆홍어 + 지나(支那) 바퀴벌레는 반드시,반드시 몰살 시켜야 할 것이다.
지나(支那) 바퀴벌레=∼◆홍어

 

 

6,

지금은 똥별의 90%가 ∼◆홍어 32들이다
90년대 첩의 자식 ∼◆세탁홍어 삼푼이 영삼이 32 들어서며
영삼이 1032의 큰수컷 32인 ∼◆홍어 김현철이 32가 앞장서서
대령에서 장군 진급 대기자들을 거의 ∼◆홍어32들로 채워놨었다.

이 문제를 안 당시 대령에서 장군코스를 밟고있던 (육영수 여사의 먼 일가뻘) 사람이 문제 제기해서 알려졌던 사실이다.

 

7,

내가 유일하게 일본 보다 한국에서 사는것이 좋은점으로 뽑았던
가족 친인척간의 인연 왕래!

그 명맥을 유지 시켜 주었던 강력한 기능였던
제사 제도!

하지만 대한민국 반역자놈들과 ∼◆홍어32들의 위계질서 파괴를 위한 폐미정책과
노인공경의 파괴에 의해 지금은 일본에 비해 더 안좋아 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일본 못지않은 ∼◆홍어 제갈대중32 같은 근친사생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미래의 대한민국은 일본이나 ∼◆홍어32들처럼 하체가 약하거나 상체가 하체보다 더 긴 가분수의 기형아들이 넘쳐나게 될것이다.

전 세계의 유전자 과학자들이 모여 근친사생아로 인한 유전자의 변형을 막기위한 유일한 방법을 찾던중 세계유일하게
가장 강력한 효능 방법으로 친인척의 잦은 왕래를 할수있었던 수단인 한국의 제사제도


이 방법을 토대로 2000년대 들어서며 친인척의 만남이 자주 이루어질수있는 방법과 근친혼을 막기 위해 노력중인 일본의
지금은 당연히 일본이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될수밖에 없겠지

잦은 지진의 일본생활의 불안감을 위해 갖은 지진 대비 건축방식의 개발, 시공등과 브라질 폐루등에 어마한 양의 토지 구입등등...

 

8,

그건 대한민국 반역 세력들인 운동권(90%가∼◆ 홍어)놈들이 70년대 캄보디아 킬링필드에서 힌트를 얻어 퍼트려나간
노인멸시 정잭에 의해서 생긴 악습이다

전교조를 통해 어린아동부터 젊은이들은 세뇌하기가 쉽지만 나이 많고 경험 많은 고령층들은
대한민국 반역 세력들인 운동권(90%가∼◆ 홍어)놈들이 지향하는 공산 사회주의에 씨알도 안멕히고 요지부동인
고령층들을 갈라치기 위해서
5.18∼◆ 홍어반란 폭동 이후 반역 세력들이 모여 계획하고 ∼◆ 홍어들 대상으로 출발하여 퍼져나가게 된 폐습이다.

(실제 내가 80년대 중반 만났던 대한민국 반역 세력들인 운동권(90%가∼◆ 홍어)놈에게서 보고 들었던 사실이다
이 내용은 차후 내 블로그에 올릴 계획인데 현재 블로그에서는 힘들것 같아 표현이 자유로운 다른 사이트를 찾고 있는 중이다)

 

9,

 단군이래 한반도 역사 기록물들에서
∼◆홍어32들이 나라를 구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지 않는가!

오히려 ∼◆홍어32들은 나라가 위태로울때 반역 매국노들만 들끓었다는 기록물들 뿐이 없지 않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36년, 6.25, 오 쒸ㅂ팔(5.18)등등
전부 핵심 세력들이 ∼◆홍어32들였지 않는가!

∼◆홍어32들은 한반도 역사이래 국가에 도움은 커녕 나라를 위태롬게만 해오며 한반도에 빌붙어 열매만(실익) 챙겨오던
한반도 역사 이래 전연 도움이 안되는 암덩어리 들였다는것이 그 동안 지켜 본 ∼◆홍어32들의 본능이란것을...

이제는 이런 통한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될때가 되지 않았는가!
언제까지 ∼◆홍어32들한테 호구로 잡혀 살것인가?

다 들 정신 차리고 심기일전 합시다!

∼◆홍어는 한반도 역사이래 대한민국에 전연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사욕만을 탐하며 헤아릴 수 없을만큼 국가를 위태롭게 해오는 종족이다. (북괴뢰 김일성 3대 : ∼◆홍어혈통 세탁∼◆홍어)

미래의 세대를 위하고 대한민국의 빠른통일과 안정을 위하여 ∼◆홍어는 반드시,반드시 몰살 시켜야만 할 것이다.
지나(支那)바퀴벌레=∼◆홍어

 

10,

본적제를 기본으로 두고

경상북도 구미
박근혜 대통령

일본 오사카(경북 포항)
쥐박이 이명박

순혈 ∼◆ㅎㅇ국 신안
∼◆ㅎㅇ근Chin4생아! 슨상 제갈대중

∼◆세탁ㅎㅇ
Chub의 자식 푼수 삼푼이 김영삼 (전남 고흥)
친일파 빨갱이 자식 운지 노알라(노무현  :  전남 강진)
삶은 소대가리 치매 재앙(문재인 할애비대에서 전남 나주 지역에서 이북 함경도로 이주한 
∼◆세탁ㅎㅇ로 남한에서 태어났다 사기 치지만 이북에서 태어났을 확률이 더크다.)

∼◆ㅎㅇ혈통 김일성(김성주) 치매 재앙과 같은 ∼◆세탁ㅎㅇ로 일제 시기 부친인 애비놈이 전북 전주에서 이북으로 이주해서 기질러 나옴

∼◆세탁ㅎㅇ 전두환

 

11,

이미 90년대부터 ∼◆홍어들은 어떤분야이던 모든것을 동원하여
∼◆홍어들 띄우기 위해 엄청 애를 썼었지

일례로
내가 만났던 암컷∼◆홍어 무명 가수 한마리가 있었는데
이 암컷∼◆홍어를 띄워주기 위해 언론 방송등에서 신문 한면을 장식해 가며 띄워 주었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는 인기를 못얻고 사라진적이 있었다(죽기전인 작곡가 길옥윤이 마지막으로 쓴 곡으로)

이 외에도 대한민국 최초 정당방위 무죄 판결 변호인 띄우기(∼◆홍어 변호사의 금전적 중재에 의한 판결)
국민 축구스타 ∼◆홍어 허정무,국민 농구스타 ∼◆홍어 허재 ,양아치 노알라 띄우기 등등 90년대부터 엄청 활발 해졌었다
국민 가수,국민 스타등의 표현이 등장했던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홍홍상종(洪洪相從)
풀이 ; ∼◆홍어는 ∼◆홍어끼리 통한다.

 

 

12,

 ㊗축 사망!(畜死亡) ㊗ 세월호(世月號)시체팔이 ∼◆홍어 자식들!!
㊗축 사망!(畜死亡) ㊗ 이태원 압사 시체팔이∼◆홍어 자식들!

 

우~웩~!
야이 씨벌놈의 ∼◆홍어32야
여그가 ∼◆홍어삭힘창고냐 이 씨벌놈아!
빨랑 ∼◆홍어삭힘창고로 꺼쥐랑껭!
역겨운 ∼◆홍어 썩는내가 진동을 현께

 

13, 

창녀출신 장노도년의 밑구멍에서 나온
㊗축 사망!(畜死亡) ㊗∼◆홍어 근친 사생아! 친일파출신 북괴간첩 매국노로 반드시 ∼◆홍어 삭힘창고에서 끄집어내 부관참시 해야 할 제갈대중! (金大中=諸葛大中) ! ∼◆홍어 1032
㊗축 사망!(畜死亡) ㊗ 친일파 뻘갱이자식에 북괴 간첩 매국노로 반드시 ∼◆홍어 삭힘창고에서 끄집어내 부관참시 해야 할 ∼◆세탁 홍어 양아치 노알라!(盧武鉉)∼◆세탁홍어 1032
㊗축 사망!(畜死亡) ㊗ 반역 ∼◆홍어새끼들이 활개칠수 있게 가장 중요한 기초를 다져 놓온 대한민국 반역자로 반드시 ∼◆홍어 삭힘창고에서 끄집어내 부관참시해야 할 ∼◆세탁홍어 첩의 자식 삼푼이 김영삼! (故郷洗濯エイ)金泳三! ∼◆세탁홍어 1032
㊗축 사망!(畜死亡) ㊗ 매국 반역자로 푹 삭혀서 반드시 ∼◆홍어삼합 재료로 써서 ∼◆홍어새끼들의 먹이로 활용해야 할 5,18(오쓉팔) 광주 ∼◆홍어 반란폭도! 1032들
㊗축 사망!(畜死亡) ㊗ ∼◆홍어혈통 한반도 역사 이례 최고의 싸이코패스 ∼◆세탁홍어 김일성(본명 : 김성주)!1032!
㊗축 사망!(畜死亡) ㊗ ∼◆홍어혈통 한반도 역사 이례 최고의 싸이코패스에 불효자 ∼◆세탁홍어 김정일!1032!
㊗축 사망!(畜死亡) ㊗ 식인종 지나(支那)바퀴벌레 창녀의 애미년 밑구멍에서 기질러 나온 바퀴벌레 모택동!1032!

 

14,

아~따! ∼◆ 홍슨상!

고로코롬 밥쳐먹고 할쥐뢀 읍스믄
사람들이 알아 듣쥐도 못할 ∼◆ 홍어 울부짖음 소리로 깽!깽!깽! 울부짖어 대덜덜 말고

ㅎㄷㅎㄷ 거리며 몸서리치느라 배시태기 <허벌나게>고플틴디
느그 고향가서 느그 집구석과
느그 ∼◆ 홍어국가면 느그 좋아혀는 썩은 내 진동혀는 틀딱 ∼◆ 홍어32들이 길거리에 <허벌나게>널리고 널렸응께
보이는 족족 사~정없이 망치로 때려잡아 요리해서 <허벌나게>쳐 먹어 가믄서 하드라고잉!

 

15, 

사람도 아닌 썩은 ~◆호ㅇ어32(ㅅㄲ)한마리가 
달라 붙어 인간 세상에서 관심받고 싶어 뭔가 흥분해서 껭!껭!깽! 울부짖어 대기는 하는데
뭘 말하려는쥐 도통 알아 듣질 못하겠다.

아~따! 홍슨상~!
~◆호ㅇ어32 껭!껭!껭! 울부짖음 소리로는 사람세상에선 뜻이 전달 안된당껭!
홍슨상!~! 껭!껭!껭! 울부짖어만 대덜덜 말고 말을 혀드랑껭! 말을!

아참! 무뇌~◆호ㅇ어32가 사람의 말을 알아 들을리가 없쥐!..쩝~!

 

16,

∼◆홍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동성애자놈들의 95% 이상이  ~◆ ㅎㅇ 32(ㅅㄲ)들로
개인적으로 주변 동성애자놈들로 의심 되는놈들이 전부 ~◆ ㅎㅇ 32(ㅅㄲ)들!

성씨  ~◆ ㅎㅇ 32(ㅅㄲ)들에게 많이 보이는 유씨
예능계를  ~◆ ㅎㅇ 32(ㅅㄲ)들이 장악한 요즘 주연으로 자주 나오며
출신지 또한  ~◆ ㅎㅇ 32(ㅅㄲ)들이 많이스며들어 고향세탁을 많이 하는
지역
 ~◆ ㅎㅇ 32(ㅅㄲ)들에게서 거의 양성 되어지는 동성애끼
어느 한점 빠지지 않고  ~◆ ㅎㅇ 32(ㅅㄲ)로서 빠지는 단점이 없다.

 

17,

현 정치가Num들(95%가 대한민국 반역자들인 운동권 출신이라 큰 기대를 않하고 정계에서 전부 몰아내고 처형이 답!)이나 미래의 정치 희망자들은 

Ji나국에서 온 조선족들은 자국인 Ji나국으로 전부 강제  추방하고
그 벌Re들에 주어졌던 모든 혜택을 파기하고 Ji나국 외의 다른 모든 나라에서 온 모든 동포들에게 
혜택을 주어져야하고 본인들이 원한다면 비자 문제를 무시하고 받아 주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외국인으로 보는 태도나 시선들도 뜯어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런자들에겐 대갈통을 후려쳐서라도(대부분이 ~◆ ㅎㅇ들에게서 많이 보여지므로 이런자들은 사람취급을 해줄 이유가 전~혀 없다. ~◆ ㅎㅇ들은 Ji나 조선족은 한 동포라 하면서 Ji나국 외의 다른나라에서 온 동포나 탈북민들에게는 차가운 시선으로 보며 외국인 취급하는 부류들이 많은 상황이다.

그러고 보면  ~◆ ㅎㅇ들이 Ji나국에 우대적이고 동포애를 갖는 모습만 보아도 ~◆ ㅎㅇ들은 Ji나 Ba퀴의 유전자를 지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 해 주는 것이다.

 

18,

2017年5月の朝日新聞主宰の世論調査で、独立を支持する県民は4%に過ぎなかったものの、51%が沖縄が「より強い権限を持つ特別な自治体」になることを支持した。 
2021年の田辺俊介の調査では、独立支持者は5%に満たなかったものの、内政の権限強化を支持した者が28%以上、内政と外交の権限強化を支持した者が42%以上いた。

*해석
2017년5월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독립을 지지하는 오키나와 주민은 4%에 지나지 않았다.
51%는 오키나와가 더 강력한 권한을 지닌 특별한 지자체가 되길 지지한다고했다

2021년 타나베 슌스케의 조사에서는 독립을 지지한다는 5%에 불과했고 내정의 권한강화 지지가28% 이상,내정과 외교의 권한강화의 지지율이 42%이상이었다.

(이 댓글 올렸던 국뽕 채널의 경우 이 영상의 일반공개에서 회원들에 한해 열람 방식으로 전환)

 

19,

석렬이 32(ㅅㄲ)가 보수?????
지나가는 개가 웃겠네...


갑자기 왜? 

1995~6년경 강남 CT은행 본점 지하 룸살롱(대한민국 반역자 운동권Nom들의 정치자금 모금과 정치 관련자들 접대와 비밀 회동을위해 불법 운영하던 업소)에서의
당시 북한산 마약 수사 검사놈들의 사건해결 자축 파티의 상황이 떠 오르는걸까.???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당시 마약범들과 교제하던 아가씨 2명(마역범들인걸 모르고 교제 했다 함)
에게 마지막으로 수사 책임자Nom였던 검사 부장 옆에서 술시중을 들어 줄것을 반 강제로 협박해서 룸싸롱까지 끌고와 시중을 들게하다.
위험을 무릅써가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까지 해줬건만 반 협박조로 아무 탈없이 보내줄테니
마지막으로 부장검사의 술시중까지 들게 하는데 설움이 복받쳐 뛰쳐나온 아가씨들을 뒤쫒아 나와 달래며 회유하던 키가 멀대같이 컷던 검사32가....

 

20,

내가 24시간 1년 365일 풀로 보고있는 Tv
nihon TV ,Japan TV
(단 이곳에서 한국 뉴스가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린다.

이유 : 
1995~6년경(1995년 12월경??) 강남에서 ~◆ 세탁ㅎ어 이해찬과 ~◆ ㅎ어 이철 이Nom들이 주도해서 진행하던
명목상은 ~◆ ㅎ어 슨상 제갈대중이Nom 정치자금 모금이라 했지만 실상은 운동권Nom들의
자금 확보를 위해 편법 운영을하며 전분야에 걸친 유명인들(대부분은 ◆ ㅎ어 )을 불러 때로는 술,계집 대접을하며 모의 작당하던 시절 한국 언론,방송 관련자Nom들과 기자가 오던날
당시 일본 특파원등 언론관련자 2명도 불러 술대접과 금전제공(당시 일본 기자들의 대화에서 나온 사실) 

*당시 불경기로 인해 본직의 일이 확 줄어 들어 야간 대리 알바 겸행

당시 일본 기자Nom들은 
'일게 하찮은 대리 운전하는 Num이 설마 일본어를 하겠어?' 하며
자기들끼리 별의별 이야기를 하며 과천에 있던 한 호텔 앞까지 가며 떠들다
내릴때 내가
일본말로 다 왔으니 내려라 하니
동시에 두 기자Nom들의 표정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하며 내렸었다.

그 뒤 약 1년후 다시 일본에 들어 갔는데
정치 관련 그 전의 일본 특파원들의 발로 뛰며 취재하던 독자적인 보도는 차츰,차츰 사라져 가며 
2000년대 초반경 부터는 정치 관련 한국 뉴스는 아예 한국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번역만 해서 그대로 내보네는 뉴스들이 대부분으로 바뀌며 현재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실정이다.

난 귀국 후 몇달은 모르고 냈었지만 알고는 바로 신청해서 지금까지 안내고 있지만
내가 다시 한국 Tv를 보고 시청료를 낸다면 그 때는 언론,방송의 주체 세력(PD,작가 예능인 포함)과 모든곳에서 대한민국 반역자들인 운동권 관련자Nom들과 ~◆ ㅎ어들이 사라진 시기가 될것이다.

 

21,

노비,노예제도는 전 세계 역사에
존재하지 않은 나라는 한 곳도 없었어!
형을 집행하며 그 사체를 인육으로 활용한 능지처사형은 1910년대까지 이어온 ji나국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일본 또한 1800년대 중반까지 존재했고 현재까지도 한국 보다 더 노예를 사람취급 안하는 사고방식이 남아 있어..
니거를 노예로 부리던 백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간질하려는 바퀴가 아니라면 좀 생각이란걸하고 울부짖어대...

아참! 노예의 후손인 ~◆ 홍어도 있었지...

 


자국민을 Νο예로 삼던 나라는 한국뿐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 했어 이 🧴Sin아!

제발  🈚식한 티 좀 내지 마라

가까운 일본도 메이지 초반까지 신분등급이 있어 왔고
최근까지도 1000민출신을 업신 여기는 행동들은 있어 왔다
일본 각지에 퍼져 있는 재일교포들이 몰려살던 지역(조선인 부락)에 가보면
아마도 아직도 비슷한 상황이라 보지만 2~3/10는 일본인들로 이 중 대부분이 선조가 1000민,Νο예 출신들로
사고능력이나 뭐든 대화해 보면 1000민,Νο예 출신들에게서 많이 보여지는 사고능력등의 행동을 볼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잘못 전해지는노가다(원뜻 : 주로 토목일로 아무 기술없이 그져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에 대한 속담중에
"노가다모 닝겐까"(토목일 하는것들이 4람이냐)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인간 취급을 안해 줬고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의 밑바탕엔 이 4고방식이 깔려져 있다.

요즘은 배웠다는 3Κἱ들이 과거에 얽메여서 더 🈚식한 티를 내는 세상이 되었으니..

 

22,

난 모든 종교 자체가 싫은데...

종교 추종 정신병 미숙아들 !

종교=공산당 (무조건 위에서 내리는 계시에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무조건의 믿음과 추종만이 필요할 뿐이다.한마디로 공산주의와 같은 독재 수단인 것이다.)

 

또 이 ㅂㅅ들의 논리가 무신론자=공산주의라 하는데  이 ㅂㅅ들의 미개한 지능을 알수있다.

공산주의자와 각종 종교의 공통점은

"나 이외의 신적인 존재란 있을 수 없는 일 "이란공통적으로 독재적인 추종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스스로가 종교이길 거부하고 공생을 지향하는 붓다의 사상으로

종교란 틀에서 제외 되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 신자를 표방하는 자들에 의해 종교화 된 현실)

 

Chook 4 망 지/나/ Ba/퀴 모택동의 애Mi 4창가 출신 몸8다 Ba/퀴/ 모택동 4생아 출산

Chook 4 망 ∼◆ㅎㅇ 근Chin 4생아 제갈대중의 애Mi 장노도 주막집  Chang녀 출신으로

죽은 남편의 형인 제갈성복과 ∼◆ㅎㅇ 근Chin 10/질 후 제갈대중 ∼◆ㅎㅇ 근Chin 4생아 출산

Chook 4 망 쥐!죄수! 클Ri톨Ri스의 애Mi 쎅모(性母) 마리아 4Chang가 출신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에게 몸8다

쥐!죄수! 클Ri톨Ri스 4생아 출산

 

종교=공산당의 대표적 예

Chook 4 망 ∼◆ㅎㅇ 혈통 ∼◆세탁ㅎㅇ 김일성(김성주) 주체사상교

이것은 바로 쥐!죄수! 클Ri톨Ri스교를 근본으로 해서 만든 주체사상교이다.

 

 

유튭 강삭신공이 하도 심해서 이렇게 올려도 강삭되네????

왜일까???????????

 

종교 추종 정Sin병 Mi숙아들 ! 종교=공산당 (무조건 위에서 내리는 계시에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무조건의 믿음과 추종만이 필요할 뿐이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와 같은 독재 수단인 것이다.)

또 이 ㅂㅅ들의 논리가 무신론자=공산주의라 하는데 이 ㅂㅅ들의 Mi개한 지능을 알수있다.

 

공산주의자와 각종 종교의 공통점은

"나 이외의 신적인 존재란 있을 수 없는 일 "이란 공통적으로 독재적인 추종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스스로가 종교이길 거부하고 공생을 지향하는 붓다의 사상으로 종교란 틀에서 제외 되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 신자를 표방하는 자들에 의해 종교화 된 현실)

 

시나 고키/부리 모택동과 ∼◆ㅎㅇ 제갈대중과 쥐!죄/Su! 클Ri톨Ri스의 출생의 비밀은 유튭 강삭신공에 의해서 올릴수 없지만 거의 똑같은 공통점을 지녔다.

 

종교=공산당의 대표적 예 ∼◆ㅎㅇ 혈통 ∼◆세탁ㅎㅇ 김일성(김성주) 주체사상교 이것은 바로 쥐!죄/Su! 클Ri톨Ri스교를 근본으로 해서 만든 주체사상교이다.

 

 

23

이젠 하다하다 별 🐕‍🦺소릴 다 들어 보네!

뭐? 일본 식당이나 음식점에서 물을 돈주고 사 먹고 화장실을 돈 내고 사용하는곳들이 많다고????????

이 ∼◆ㅎㅇ32들 일본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실제와는 180% 다르게 거짓선동을 하며 국뽕 주입하고 쳐 Za빠졌네

국토TV란 채널에서는 오키나와인들 실제 여론과는 180% 다르게 거짓선동 하며 국뽕 주입하고

또 어떤 채널은 일본인들의 대응서비스 나 눈 치우기등에서 없는 사실로 국뽕을 주입 하더니...

 

운동권 출신 ∼◆ㅎㅇ 이 32들목적이 도대체 뭘 목표로 이 따위 거짓선동으로 울부짖어대는걸까?

(대충 짐작은 간다.쩐은 2번째이고 정치적인 목적 이겠지만)

 

정말 이런Num들 고사포 난사형으로 처벌하지 못하면 국가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될것이다.

 

24

최순실의 계략?????? 뭔 구신 씨나락 까 Chu 먹는 소리하고 Za빠졌어!!!!!!

최순실씨도 억울하게 당했구만!

이런 덜 떨어진 32들이 우파라는게 낮이 뜨거워진다.

https://youtu.be/sbwngmvftpc?si=gkMQaHYBONVQV4fq

박대통령명예회복채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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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문장들을 약자나 변형해서 올려도 100% 강삭

 

 단군이래 한반도 역사 기록물들에서
∼◆ㅎㅇ 32(ㅅㄲ)들이 나라를 구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지 않는가

오히려 ∼◆ㅎㅇ 32들은 나라가 위태로울때 반역 매국노들만 들끓었다는 기록물들 뿐이 없지 않은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36년, 6.25, 오 쒸입팔(5.18)등등
전부 핵심 세력들이 ∼◆ㅎㅇ 32들였지 않는가

∼◆ㅎㅇ 32들은 한반도 역사이래 국가에 도움은 커녕 나라를 위태롬게만 해오며 한반도에 빌붙어 열매만(실익) 챙겨오던
한반도 역사 이래 전연 도움이 안되는 암덩어리 들였다는것이 그 동안 지켜 본 ∼◆ㅎㅇ 32들의 본능이란것을...

이제는 이런 통한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될때가 되지 않았는가?
언제까지 ∼◆ㅎㅇ 32들한테 호구로 잡혀 살것인가?

다 들 정신 차리고 심기 일전합시다!

∼◆ㅎㅇ는 한반도 역사이래 대한민국에 전연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사욕만을 탐하며 헤아릴 수 없을만큼 국가를 위태롭게 해오는 종족이다. 
(북괴뢰 김일성 3대 : ∼◆ㅎㅇ혈통 ∼◆세탁ㅎㅇ)

미래의 세대를 위하고 대한민국의 빠른통일과 안정을 위하여 ∼◆ㅎㅇ는 반드시,반드시 몰살 시켜야만 할 것이다.
지/나(支X)바/퀴벌/레=∼◆ㅎㅇ

 

위 댓글들 대부분은 본인이 실제 경험했었던 내용들로 

비록 유명인이 아닌 하찮은 일반인의 일대기 이지만 일반분들이 경험 해보기 쉽지 않은 일들을 보며 자라 왔기에

 제약이 없는 다른 개인 사이트의 블로그를 만들어 기록 해 볼 예정입니다.

(늦어도 올 연말 안으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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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日本語)로 지나(支那)는
시나(シナ : 支那)이다.
 
일본어 발음상 첫자를 따서  
47 (4 ; し:시 +7 :  なな : 나나)  시나(シナ)라 사용핳수도 있다
 
*
1832 (18은 다들 알테고 뒤에 32는 셋의 세+뒤에 2는 발음법 상 비슷하여 셋이 --->새끼라 표현한것이다
1032
 
이건 90년대 ~◆ 세탁ㅎㅇ인 동창놈과 동업을 하던 형뻘되는 ~◆ ㅎㅇ(홍어 약자)놈의 하는짓이 하도 얄미워서
당시 삐삐문자로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마지막 문자로 남겼던 숫자이다.
그 후 그 ~◆ ㅎㅇ형이란놈 한테
"그 숫자가 무슨 뜻인지 아슈?" 하고 물어 보니 모르겠다고 해서
착실하게 설명 해 줬더니 입에 게 거품을 물며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요즘 유튜브에서 무조건 강삭신공이 많아지고 있는 상항입니다.
 
또 올려도 올린 당사자만 볼수있고 다른 사람들은 보여 지지 않거나
(대댓글 숫자는 10 이라 나오는데 펼쳐 보면 10에 못미치는 숫자) 상대방이 대댓글을 보내도 심한 욕설이나 지/나와 같은 금기어는 100% 강삭이지만 그렇지 않은 대댓글이라도 알림이 없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럴경우 확인 할수 있는 방법은 댓글란 위에 정렬 기준이란것을 볼수있는데
 
첫번째가 인기 댓글순 밑에가 최신순 이라 나와 있는데 보통 영상을 처음 클릭 했을때
나타나는 댓글들이 인기 댓글순 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최신순으로 바꾸면 표시된 숫자대로의 모든 댓글들을 볼수 있게 됩니다.
 
단 안 보이던 댓글에 추천을 눌러도 누른 본인에게만 보여지고
크롬이던 엣쥐든 모든 사이트의 오른쪽 맨 위의 본인 로그인 상황을 클릭 해 보면
"기타 프로필"란의 맨 아래쪽 "게스트"를 클릭하면 로그인 안된 새로운 창이 열리는데
 
여기에 자신이 보던 창 주소를 복사해서 새로운 창에 붙여넣기 하면 로그인 했던 창에서는 나타났던 댓글이 아예 안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하게 되며 로그인된 창에서 확인 한 방법처럼 실행해 보면 본인이 쓴 댓글이 강삭 되거나 본인만 볼수있는 댓글인지 아니면 아예 강삭 된 글인지 정확하게 확인 할수 있습니다.
 
대댓글들 중 ∼◆ㅎㅇ들에게 최대한 강삭 안 당하게 전부 답글을 달아 준다고 했는데 유감 스럽게 반은 나만 볼수 있거나
강삭 되어져 있네요.
 
특히 서쪽 바다 건너 Ba퀴들과 7시 지역 ∼◆ㅎㅇ들을 대상으로 한 댓글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한 마디 욕설이 안들어 가도 무조건 강삭 되어지는 경우도 있답니다.(일반인에게는 절대 알려져서는 안되는 사실등등)

오세훈의 진짜 고향과 지지집단은??

2023-01-07 21:59:55 | 나의 글(日記)

이 글은 2016년3월28일 일베에 올렸던 글입니다.

https://www.ilbe.com/view/7776936374

 

 

 

 

 

1글을 잘 쓰는 입장이 아니다보니 그동안 답답해하며 망설이다 쓰는 글이니 이해를 바라며.....

 

현제 일베등 인터넷상에서∼◆세탁홍어 오세훈이놈의 성향이 친박이고 고향에 대해 서울 성동구라 계속 주장하는놈들이 있다. 

이놈들은 과연 무슨 목적으로 이런 허위 정보를 유포하며∼◆세탁홍어 오세훈이란놈을 못띄어 안달이 난것일까?

 

이놈에 대해 제대로 아는분들은 2000년도 초반경부터 중앙디국(중앙일보 디지털국회)나 데일리안,폴리젠,서프라이즈,네이션코리아등에서 활동한분들이라면 이놈이 어떤놈이고 어떤집단에서 지지하고 밀고있는지를 알고있지만

그 후에 정치에 관심을 가진분들이라면 당시 박근혜의원 캇터 칼 테러 사건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오세훈이란놈의 지명도나 정체성향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막연히 당시 박근혜의원의 오세훈 후보 지원유세로 친박으로 알려지게 되었던것일 뿐이다.

(당시 순수한 유명 친박 지지 논객으로 현재 많이 알려진 이종택님<필명:산지기>,팔공님,낭인논검님,푸른벌판님?,미국서 활동하시던 분 이름은??등으로 그 외에도 많은 논객들이 있었지만 중간 변절하거나 정체성이 모호한 글들을 올린자들이 대부분이라)

 

그 사건 이후로∼◆세탁홍어 오세훈이란놈도 평상시때는 대놓고 박 대통령을 까질 못하는 입장이 되었다.

딱 한번 18대 대선 후보경선 때 김문수와 함께 국민참여 경선을 주장하다 비난을 받은일이 있는데 

이후로 조용히 앞날을 도모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으로

잘 못하다 배은 망덕한놈에 자신의 정체성까지 탄로나게되면 그동안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박 대통령 후임을 목표로 지지세를 얻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것일 뿐이다.

 

사실 당시 친박 지지자들은∼◆세탁홍어 오세훈이란놈에 대해서 알거나 거론하던분들이 전무하던 시절로 친이계 운동원놈들인 정두언,신지호,박용석(시대유감),자유의깃발,무명씨,델모나코등등의 글에서 쥐박이 후임의 대선주자 인물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던놈이었다.

인터넷상에서 당시∼◆세탁홍어 오세훈이놈에 대한 활동이나 행적들을 찾아 보면 거의 전무 할 정도로 알려진 인물이 아닌데 느닷없이 친이 지지 농객놈들(90%가∼◆홍어)의 글에서 처음으로 대두되어졌던놈이다.

 

공통적으로 이놈들은 다 운동권 출신들이였다.

처음 등장시기 친이 쥐빠인걸 속이고 박근혜 대통령을 미는척 행동하다 17대 대선 전 해부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여론 조작질을 해가며 쥐박이를 대선 후보로 만든놈들였다. 

 

 

이놈들이 17대 대선전 대권 후보 결정도 나기전인 경선 시기에 이미 쥐박이 선거운동원 핵심 쥐새끼들이 쥐박이 후임 18대 대권 주자로 이구동성으로 뽑았던놈이∼◆세탁홍어 오세훈이놈였다.

 

또 황당한것은 후일 이 오세훈이란놈의 지지집단과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친이 지지 농객놈들은 쥐박이놈의 17대 경선후보 당선과 함께 그 동안 자신들이 써왔던 모든 글들의 삭제 작업에 들어가 지금은 대부분이 존재치 않는다는것이다. 그 후 친이지지 핵심 농객놈들은 인터넷상에서 모든 활동을 중단한 상태로 지금까지 이르며 수졸들로 하여금 정체를 숨기고 자신들이 미는놈을 띄우는 활동을 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니 그 후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분들로서는 정확하게 알수가 없을 수밖에 없는것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현재도 활동하시는 이종택님등에게 물어보면 정확하게 알게 될것이다) 또한 쥐박이놈의 고소고발 난발시 잠시 고개를 숙이고 쥐박이편에 섯다 돌아온"비바람"이란 논객도 잘 알고 있을것이고

 

1.고향∼◆세탁홍어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삼덕리産)

2,악질 운동권 출신이며 민변 출신(좌에서 우로 이념 전향했다는 기록이나 행적은 그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

3,친이 쥐박이 계열(어떤 ∼◆홍어 새끼들이 자꾸 친박이라 껭!껭!껭! 울부짖어 대는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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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개화에 눈뜬 곳… 고ㆍ박ㆍ국ㆍ김씨 대표적 집안
[호남인맥] 담양


 

오세훈 전 서울시장 담양.jpg

신학문 가르친 창평의숙
호남 인재들 몰려와 공부
만주까지 팔려간 대바구니
서울역서 장사하다 다수 정착
수도권 향우 15만~20만 추산
관계 이만의 전 환경장관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배출
재계 유영희 유도 회장
연예인 중엔 한혜진ㆍ현빈

 

 

출처 : 전남일보  http://www.jnilbo.com/read.php3?aid=1403794800445895333&search=%BF%C0%BC%BC%C8%C6%20%B4%E3%BE%E7

 


북한 "전라도는 죽여야해" , 전라도 "북한 빠는이유"

2023-01-04 02:09:21 | 북한

북한 "전라도는 죽여야해" , 전라도 "북한 빠는이유"

신무선
http://www.ilbhttp://www.ilbe.com/view/10604997995e.com/view/1060499799
38 2018-07-04 22:41:03

 

 

6.25 한국전 당시 김일성의 전라도 대학살 !

한국전 당시 북한의 점령기간 중에 벌어진 살육파티의 희생자 72.5% 전라남도에서 발생. 

서울.....1,383명
경기.....2,536명
충북........663명
충남.....3,680명
전북.....5,603명
전남.,..43,511명(72.5%)
경북.......628명
경남.......689명
강원....1,216명
제주........23명
철경........62명

총수..59,964명

당시 김일성은 전라도에서 30만명을 학살할 계획이었으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미처 다 죽이지 못하고 부랴부랴 북으로 후퇴. 


아직까지 북한군이 전라도에 대해 학살을 단행한 원인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전라도의 경우에는 북한군의 남침에 대해 당시 상당히 우호적인 여론이 강했었고, 이 때문에 당시 북한군이 남하를 하는 가운데에서도 피난을 가거나 하는 행렬이 거의 존재도 하지 않았다. 물론 교전기록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김일성이 전라도에서, 그것도 자신들의 남침에 상당히 우호적인 여론이 강했던 전라도에서 왜 이런 대학살극을 단행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가지의 경우로 예측이 가능하다.

1.서울에서 3일간 체류했지만, 기대했던 전라도의 봉기는 없었다.- 빨치산을 비롯해서 박헌영이 좌익사범을 가장 많이 양성했던 지역으로 손 꼽히는 지역이 전라도였다. 전세계 모든 공산주의가 마찬가지이지만, 노동자와 농민을 그 대상으로 하여 세력을 확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해방 후 전라도에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공업시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였고, 북한지역에 공업시설이 집중되어져 있었기 때문에(해방후에 남한의 전기도 북한에서 공급을 받았다.) 북한 노동자 세력의 대부분은 공산주의 세력이 되어 있었다. 남한에서는 북한보다 공업화가 덜 되었기 때문에 노동자세력을 공산주의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고, 농민이 그 대상이었는데, 전라도가 농업이 가장 왕성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박헌영이 주 무대로 활동을 했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박헌영은 전라도에서 엄청나게 많은 공산주의자들을 남로당에 가입을 시켰으며, 이들중 일부를 무장봉기 세력으로 양성을 했다. 소위 알려진 남부군, 즉 빨치산이다. 이들 농민세력으로부터 할당받은 식량을 기반으로 새로운 회원들을 계속해서 증원시켜 나갔는데, 어느 정도 세력이 구축이 되자, 월북하여 김일성에게 "남침할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헌영이 김일성에게 남침을 요구하면서 했던 주장은 "내려가서 서울만 점령하고 있으면, 나머지 지역에서 알아서 봉기가 일어나서 적극적으로 동조를 해줄 것이기 때문에 큰 피 흘릴 일 없이 쉽게 적화가 가능할 것이다"라는 논리에서였다. 그 지역이 바로 전라도였던 것이다. 당시 남한 정규군이 2만 5천명이었는데, 빨치산의 규모가 2만명정도였으니, 박헌영이가 하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김일성 역시도 박헌영의 계략이 옳다 여겨 기습남침을 감행하고 계획했던 대로 서울을 단일에 점령을 하고 3일동안 남한내부에서의 궐기를 기다렸지만, 기대했던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보고 대단히 당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일성은 남침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두고 대단히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KBS역사 스폐셜에서는 "왜 3일동안 서울에서 머물렀나?"라는 주제로 북한군이 3일동안 서울에서 체류한 것을 두고 여러가지 의혹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핵심적인 요소는 지나간 방송이었다. 

김일성은 전라도에서 일어나야 할 봉기가 발생하지 않자,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전라도에서만 대대적으로 학살극을 단행했다고 하는 설이 현재 가장 신빙성이 높은 설 중의 하나이다. 전라도에서만 봉기를 해주었다고 한다면 남한은 벌서 통일을 시켰을 것인데, 전라도에서 봉기를 하지 않아 그것이 성사되지 못했고, 낙동강 저지선을 마지노선으로 배수진을 친 연합군을 더 이상 침공해 들어가지 못해, 그 앙갚음을 더더욱 잔인하고 악랄하게 했다는 것이다.


2.두번째 이유는 전라도의 친일파와 관련한 내용이다. 본인의 블로그에 이미 여러 자료를 올려 놓았지만 일제시대 당시에 가장 왕성한 친일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려진 곳이 전라도이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독립운동가 배출비율만 놓고 봐도 전라도는 경상도의 절반에 불과하다. 더더욱이 인구는 당시 전라도가 팔도에서 가장 많기도 하였다. 인구는 가장 많은데 독립운동가가 가장 적었다는 말은 바꾸어 생각할 때, 친일파가 가장 많았다는 의미로도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럼 전라도에서는 왜 이렇게 친일파가 많았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전라도의 친일파의 기원은 동학란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말기에 전라도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봉기했던 농민군들은 조선조정과 화약을 맺어 전라도의 자치권을 부여받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전주 화약"이다. 전주 화약 제1항이 "전라도의 자치정부수립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전라민국이라는 말은 이때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농민군은 결국 화약을 위반했고, 다시금 서울로 진격해 올라왔는데, 그 과정에서 민비의 요청을 받은 청국과 일본군에 의해 결국은 해체당하고 만다. 헌데 이들 해체된 세력들이 훗날 다시 결집하는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진보회"의 결성이었다. 창립기일 당시 회원만 16만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세력을 거느린 친일 조직이 탄생을 한 것이다.

즉, 나라가 식민지배의 비극에 빠지게 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었다. 진보회는 훗날 정부내 친일조직인 송병준의 "유신회"와 결합하여 "일진회"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한일합방을 반대했던 이등박문에 대한 탄핵건한일합방 반대 세력에 대한 사살과 탄압등이 대부분 이들 세력에 의해 자행이 되어졌다. 이들은 한일합방 이후에 일제에 의해 해산이 되게 된다.

즉, 친일파의 성지가 바로 전라도였던 셈이다. 동학란으로 조선을 돌아갈 수 없는 궁지로 몰아넣어버리고, 이것이 실패하게 되자, 바로 뒤에는 친일조직으로 다시금 부활하여 나라를 패망시키는데 앞장을 섰던 것이다. 당시 동학란에 대해 비난하는 내용은 조선시대 마지막 재상인 "매천 황현"선생이 남긴 일기집인 "매천야록"에도 전라도에 대한 비난이 신랄하게 전해져 있기도 하다. 매천 황현 선생은 한일합방후에 자살을 했던 우국지사이기도 하다.

김일성은 일부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김성주라는 이름으로 나름 독립운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승만과 꼭 같은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으나, 이승만이 자유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했다고 한다면 김일성은 공산주의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차잇점이 존재를 한다. 하지만 이승만이나 김일성이나 친일파들이 용서못할 조직이자, 인간들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터.

이승만 대통령은 전라도를 "하와이 같은 놈"들이라 할 정도로 혐오하였고, 정부 요직에 전라도 인사들이 등용되는 것을 최대한 배척한 대통령으로도 유명한데, 초대 내각에 전라도인은 대법원장이었던 김병로 한사람 밖에 없었을 정도로 전라도인들의 등용을 거의 하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승만의 이런 전라도 혐오증이 김일성에게도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냐 하는 것이 이제 그 두번째 이유였던 것이다. 전라도에서 남로당 조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활동했던 것과는 별개로, 그들의 신분자체가 친일이었다는 것이 김일성에게는 용서못할 이유였었고, 그래서 남침을 한 기회에 팔도에서 가장 많은 친일파가 있었던(드러난 친일파뿐만 아니라, 일반 친일파들까지도 포함해서) 전라도에 대해 학살을 단행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공식적으로 공개된 자료는 아니지만, 얼핏 듣기로는 당시 김일성이 전라도에서 30만명을 학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미처 그만큼 다 죽이지 못하고 부랴부랴 북으로 후퇴해 올라갔다는 설이 있다. 

위의 자료에서도 나와 있지만, 전라도의 월북자 수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작은 이유가 북한에 올라가서 전라도인임이 들어나면 죽게 될까봐, 월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냐 하는 추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은 공포심이 있었기 때문에 월북 역시도 감히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역사는 많은 미스터리를 우리에게 남겨두었다. 나를 비롯해 몇분의 역사관심론자들이 이 사실에 대해 많은 의견을 주고 받고 있는 상황이긴 한데, 솔직히 개인이 구할 수 있는 자료의 한계같은 문제로 인해서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얻어낼 수 있었던 의견만을 이야기 한다면, 1번째의 이유나 2번째의 이유가 별개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2가지 이유가 모두 작용을 해서 학살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즉, 김일성이 전라도에서 대대적으로 학살을 한 이유가 첫번째와 두번째 이유를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않았겠냐 하는 의견이 가장 많은 설득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봉기하지 않았던 이유에다가 친일파가 엄청나게 많았던 지역이라는 점이 공통적으로 작용해서 그만큼 죽인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이다.
 
 

 

 

 

약속을 안지키고 배신하는 홍어나라

훈요십조에도 가르침이 있다.

 

홍어들이 북한 빠는것은

북한은 몽둥이로 홍어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홍어들의 태평성대는 지금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홍어들은 

역사가 말하듯 멸족 당할것이다.

 

전향한 전라인들이여

그나마 살려면

홍어들을 깨우쳐라 특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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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폭도 유공자와 6.25 참전용사의 국가처우 비교 도표

 

 

エイ

元籍上大韓民国内の7時方向の全羅道<湖南地方>出身の事

洗濯エイ ; 全羅道出身の元籍を隠し他の地方に騙す事

大半のエイ達 の性格や行動はまるでシナ(支那)人と変わらない民度の低さを見せている。

 

7시 홍어국 폭도 집단 (7時エイ国エイリアン暴徒集団!)

 

종북 홍어들(従北エイ達)

 

축!사망!(畜死亡!) 북괴뢰 세탁홍어 김일성 전남대 분향소 (全南大 畜死亡!北 洗濯エイ金日成 焼香所)

 

 


한재이목 묘비명(墓碑銘) -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년∼1638년)

2022-12-16 02:33:17 | 한재(寒齋) 이목(李穆)(선비정신)

계곡선생집(谿谷先生集) 제10권

 

 

 

 

진용교위 영안남도병마평사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동지춘추관 성균관사 이공 묘지명

(進勇校尉 永安南道兵馬評事 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 弘文館提學 藝文館提學 同知春秋館 成均館事 李公 墓誌銘)

 

 

 

 

고 영안남도 평사 증 이조참판 이공(李公)의 휘(諱)는 목(穆)이요 자(字)는 중옹(仲雍)이다.

 

성묘조(成廟朝)의 명유(名儒)로서 연산(燕山) 무오년 사초(史草)와 관련된 일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그 묘소가 통진(通津) 상포(霜浦)에 있는데, 1백 28년이 흐른 뒤에 김공 상헌(金公尙憲)이 그 묘표(墓表)를 썼고, 그로부터 또 7년이 지나서 공의 증손인 부사(府使) 구징(久澄)이 나에게 묘지명을 부탁해 왔다.

 

아, 공이 돌아간 뒤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공이 남긴 글을 읽어보고 그 사람됨을 상상해 보면 지금도 늠름하게 생기(生氣)가 우러나오는 듯하니, 이런 분이야말로 내가 묘지명을 써 드려야만 하리라.

 

 

공은 어려서 점필(佔畢 김종직(金宗直)의 호) 김공의 문하에 들어가 수업하면서 학문에 힘을 쏟고 문사(文詞)를 능숙하게 익혔는데, 글 중에서는 《좌씨춘추(左氏春秋)》를 좋아하였고, 옛사람 중에서는 범 문정(范文正 중국 북송(北宋)의 명신 범중엄(范仲淹))의 사람됨을 사모하였다.

 

19세 때 기유년 진사과에 제2명으로 급제하여 태학(太學)에서 노닐게 되었는데, 언론이 강개하고 지기(志氣)가 준열하여 선악(善惡)을 따짐에 있어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에 동배들로부터 추복(推服)을 받았다.

 

 

성묘(成廟)가 언젠가 병이 들자, 대비(大妃)가 시켜 기도를 행하게 하면서 반궁(泮宮)의 벽송정(碧松亭)에 음사(淫祠)를 설치토록 한 일이 있었다. 이에 공이 제생(諸生)의 앞장을 서서 무당을 몽둥이로 때려 내쫓았는데, 무당이 이 사실을 궁중에 호소하자 대비가 대로하여 상의 병이 낫기를 기다렸다가 이 일을 고해 바쳤다. 그러자 성묘가 겉으로 노한 척하면서 성균관에 명하여 그 유생들을 모두 기록해 올리도록 하였는데, 유생들이 크게 꾸지람받을 것이 분명하다고 여겨 서로 도망쳐 숨기에 바빴으나 공만은 태연히 그대로 임하였다. 그 뒤 성묘가 곧바로 대사성을 불러 하교하기를,

 

“그대가 제생(諸生)을 제대로 이끌어서 사습(士習)이 올바르게 되도록 하였으므로 내가 가상하게 여기는 바이다.” 하고, 특별히 술을 내려 주었다.

 

윤필상(尹弼商)이 정승으로 있으면서 권세를 좌지우지할 때 마침 가뭄이 들자 공이 상소하기를,

 

“필상을 삶아 죽여야만 하늘이 비를 내려 줄 것이다.”

하였는데, 필상이 공을 길에서 만나자 큰소리로 외치기를,

 

“자네는 이 늙은이의 고기를 꼭 먹어야만 하겠느냐?”

하였으나, 공은 고개를 쳐들고 걸어가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뒤에 필상이 암암리에 성묘를 권하여 자전(慈殿)의 뜻을 따라서 불교를 섬길 것을 청한 일이 있었다.

공이 이 말을 듣고는 또 제생(諸生)을 이끌고 상소하면서, 필상을 간사한 인물로 논하고 간귀(奸鬼)로 지목한 뒤 복주(伏誅)시킬 것을 청하였다.

이에 성묘가 대로하여 친히 공을 신문하기를,

 

“네가 어째서 나의 정승을 귀신이라고 배척하느냐?”

하니, 공이 대답하기를,

 

“그의 행동이 저와 같은데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귀신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장차 공을 형리(刑吏)에게 내리려 하였으나, 다른 정승들이 극력 변호해 준 덕분에 공주(公州)에 유배되는 정도로 그쳤는데, 이로부터 공의 직성(直聲)이 더욱 퍼지게 되었다.

 

 

그 뒤 을묘년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 겸 종학 사회(宗學司誨)를 제수받았다가 영안남도 평사로 나가게 되었는데, 급기야 무오사옥(戊午史獄)이 일어나자 공이 과연 필상의 모함을 받고서 김일손(金馹孫), 권오복(權五福) 등과 함께 참혹한 화를 당하고 말았다.

공은 사형장에 나가서도 신기(神氣)가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으며 스스로 절명가(絶命歌)를 지어 부르고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이때가 공의 나이 28세 때의 일이다. 그런데 공에 대한 필상의 유감이 그래도 풀어지지 않아 갑자년 사화(士禍) 때에 이르러 다시 지하에 묻힌 공의 시신에 모욕을 가했으니, 아 참혹하다.

 

 

그러다가 중묘(中廟)께서 보위(寶位)에 오르면서 복관(復官)을 명하였고, 뒤에 아들이 귀하게 되자 지금의 관직을 추증받게 되었다.

 

공의 선조는 완산(完山 전주(全州)) 사람이다. 고조 백유(伯由)는 개국공신으로 완성군(完城君)에 봉해졌다. 완성이 율(栗)을 낳았는데 군기시 정에 이르렀고, 정이 손약(孫若)을 낳았는데 고성 군수(高城郡守)에 이르렀고, 고성이 윤생(閏生)을 낳았는데 부사과(副司果)로서 호조 참의를 증직받았다. 참의가 남양(南陽) 홍씨(洪氏)에게 장가들어 공을 낳았으니 이들이 공의 고비(考妣)이다.

 

 

공의 부인 김씨(金氏)는 참판 수손(首孫)의 딸이다. 아들 세장(世璋)을 두었는데 태어난 지 1년 만에 공이 화를 당하였다. 그 뒤 장성하여 문과(文科)에 급제한 뒤 관직이 관찰사에 이르렀다. 부인은 공보다 60년 뒤에 죽어 공주(公州) 서촌(西村) 김씨의 선영에 묻혔다.

 

관찰사는 5남(男)을 두었다. 맏아들 건(鍵)과 그 다음 난(鑾)과 그 다음 기(錡)는 모두 벼슬하지 않았고, 그 다음 갱(鏗)은 병조 정랑이고 철(鐵)은 좌승지인데 모두 문과를 통해 진출하였다.

딸이 셋 있는데, 맏딸은 한성 참군(漢城參軍) 정수후(鄭守厚)에게 출가하였고, 그 다음은 종실인 화릉부정(花陵副正) 수혜(秀蕙)에게 출가하였고, 그 다음은 현령 구운한(具雲翰)에게 출가하였다. 내외의 후손들이 모두 2백여 인에 달하는데, 부사 구징은 바로 승지의 맏아들이다.

 

 

 

공은 높은 재질과 준열한 절조의 소유자로서 성묘(成廟) 때 북돋아 길러졌다가 혼조(昏朝)에 이르러 젊은 나이에 일찍 꺾이고 말았는데, 지금에 와서도 사람들이 무오년의 사화를 말할라 치면 그만 기가 턱턱 막히곤 한다.

 

그러나 겨우 한 세대를 지나는 동안 자손들이 번창하여 면면히 그 뒤를 잇고 있으니, 이는 그야말로 공이 미처 누리지 못한 복을 보답받고 있는 것으로서 천도(天道)가 어긋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공의 유고(遺稿) 2권이 세상에 전해진다.

그리고 공주의 인사들이 일찍이 공이 이곳에 유배를 왔다고 하여 충현서원(忠賢書院)에서 공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아, 이쯤 되면 불후(不朽)하게 되기에 충분하다.

이에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아 이공이여 / 猗嗟李公

육신은 썩었어도 이름은 향기롭네 / 骨朽名芬

그 묘소 오래 되었지만 / 其墓雖故

나의 이 명 새로워라 / 其銘則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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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齋墓碣 谿谷 張維先生集 卷 之 十

 

進勇校尉永安南道兵馬評事。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弘文館提學藝文館提學同知春秋館成均館事李公墓誌銘。

 

 

故永安南道評事 贈吏曹參判 李公 諱 穆。字仲雍。成廟朝名儒也。燕山戊午。坐史事被害。墓在通津霜浦。歷百有二十八年而金公尙憲記其表。又七年而公之曾孫府使久澄請維銘其竁。

 

嗚呼。公之沒也久矣。然讀其書想見其人。凜凜猶有生氣。是可銘也已。公少從佔畢金公受業。力學工文詞。於書嗜左氏春秋。於古人慕范文正之爲人。年十九。

中己酉進士第二名。

游太學。言論慷慨。志氣峻烈。辨覈臧否。無所回互。以此爲流輩所推服。

 

成廟嘗有疾。大妃使女巫行禱。設淫祀於泮宮之碧松亭。公倡諸生。杖其巫而逐之。巫訴諸宮中。大妃大怒。俟上疾瘳以告。成廟陽怒。命成均館悉錄其儒生。儒生以爲必獲大譴。爭亡匿。公獨不亡匿。成廟尋召大司成敎曰。爾能導率諸生。使士習歸正。予用嘉之。特賜酒。

尹弼商爲相用事。會天旱。公上疏曰。烹弼商天乃雨。弼商遇諸途。呼曰。君必欲食老夫肉耶。公昂然不顧而去。後弼商陰勸成廟請從慈殿奉佛。公聞之。又率諸生上疏。論弼商奸邪。目以奸鬼請誅之。成廟大怒。親問公曰。若何以斥吾相爲鬼。公對曰。所行如彼而人不知。所以爲鬼。上將下吏。賴他相力救。止謫公州。自是直聲益振矣。

 

中乙卯文科狀元。授成均館典籍兼宗學司誨。出爲永安南道評事。及戊午史獄起。公果爲弼商所搆陷。與金馹孫,權五福等同被酷禍。臨刑神氣如常。自作絶命歌。時年二十八。弼商恨公猶不已。至甲子之禍。戮及泉壤。嗚呼慘矣。中廟踐阼。命復官。後以子貴贈今官。

 

公之先。完山人。高祖伯由。開國功臣封完城君。完城生栗。軍器寺正。正生孫若。高城郡守。高城生閏生。副司果贈戶曹參議。娶南陽洪氏。是爲公之考妣。公之配金氏。參判首孫之女。

 

有子世璋。生一歲而公被禍。及長。擢文科官至觀察使。夫人後公六十年而卒。

葬于公州西村金氏之塋。觀察有五男。長鍵次鑾次錡。皆不仕。次鏗兵曹正郞。

鐵左承旨。皆以文科進。女子三人。長適漢城參軍鄭守厚。次適宗室花陵副正秀蕙。次適縣令具雲翰。

 

內外諸孫二百餘人。府使久澄。卽承旨之胤也。公以高才峻節。培植於成廟。

而夭椓於昏朝。至今人譚戊午之禍。爲之氣塞。然甫一世而子姓昌大。綿綿未艾。此殆公未食之報。而天道之不爽可見也。

公有遺稿二卷行於世。

公州人士。以公嘗謫於是也。俎豆公于忠賢書院。

 

嗚呼。足以不朽矣。

銘曰。

猗嗟李公。

骨朽名芬。

其墓雖故。

其銘則新。


이목묘표(李穆墓表) -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

2022-12-16 02:28:09 | 한재(寒齋) 이목(李穆)(선비정신)
 
 
  이목묘표(李穆墓表)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 참판 겸 홍문관 제학 예문관 제학 동지춘추관 성균관사(吏曹參判兼弘文館提學藝文館提學同知春秋館成均館事) 행 진용교위 영안남도병마평사(行進勇校尉永安南道兵馬評事) 이공 목(李公穆)의 묘(墓)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 참판 겸 홍문관 제학 예문관 제학 동지춘추관 성균관사(吏曹參判兼弘文館提學藝文館提學同知春秋館成均館事) 행 진용교위 영안남도병파평사(行進勇校尉永安南道兵馬評事) 이공(李公) 묘표(墓表) 음기(陰記)

공(公)의 휘(諱)는 목(穆)이요, 자(字)는 중옹(仲雍)이니, 완산인(完山人)으로 개국공신(開國功臣) 완성군(完城君) 백유(伯由)의 4세손(世孫)이다. 증조(曾祖) 휘 율(栗)은 군기시 정(軍器寺正)이요, 할아버지 휘 손약(孫若)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고성군사(高城郡事)였다. 고(考) 휘 윤생(閏生)은 부사과(副司果)로 이조 참의에 증직(贈職)되었고, - 9자 빠짐 - 비(妣)는 맹준(孟準)의 따님으로 성화(成化) 신묘년(성종 2, 1471년)에 공을 낳았다. 

공은 타고난 성품이 효우(孝友)가 있고 충직(忠直)하였으며, 활달(豁達)하고 대단한 절개(節槪)가 있었다. 나이 14세에 처음으로 학문에 뜻을 두어 점필재(占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門下)에서 수업하였는데, 밤으로 낮을 삼았으니 이때부터 학업이 크게 진취하여 성문(聲聞)이 날로 전파하였다. 홍치(弘治) 기유년(성종 20, 1489년)에 진사시(進士試)에 입격(入格)하여 성균관에 유학하였는데, 그때에 마침 성종 대왕(成宗大王)이 질병이 있었으므로 인수대비(仁粹大妃)가 비밀리에 무녀(巫女)로 하여금 푸닥거리를 하게 하여, 성균관의 벽송정(碧松亭)에서 야제(野祭)를 지내게 하였다.

이에 공이 제창(提唱)하여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금하고, 더 나아가 그 무녀를 매질을 하였다. 무녀가 궁중에 하소연을 하니, 대비가 크게 노하여 임금의 질병이 낫기를 기다렸다가 상에게 고하였다. 그러자 성종이 거짓 노하여 성균관으로 하여금 그때의 유생(儒生)의 성명을 다 적어 올리도록 하였는데, 모든 유생들이 틀림없이 한번은 혼쭐이 나리라 생각하고 모두 도피하였으나 공만은 피하지를 않았다. 단자(單子)가 올라가자 성종께서 대사성에게 하교하기를, “그대가 유생들을 잘 교도(矯導)하여 선비들의 습성을 올바르게 하였으니, 내가 가상하게 여기는 바이다.”라고 하고는 특별히 상을 내렸다.


한번은 공이 가뭄으로 인하여 상소(上疏)하기를, “윤필상(尹弼商)을 삶아야만 비가 내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윤필상이 길에서 공을 만나 불러 세우고 이르기를, “그대가 꼭 이 늙은이의 고기를 먹고 싶은가?”라고 하니, 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소”라고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윤필상이 은밀히 성종에게 권유하여 자전(慈殿)의 숭불(崇佛)하는 뜻을 청종하도록 하였는데, 공이 이 말을 듣고 또 유생들을 인솔하고 항소(抗疏)를 하여 윤필상을 간귀(奸鬼)로 지목하고 그 간사함을 극론(極論)하며 죽이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크게 노하여 친히 귀자(鬼字)의 뜻을 묻자, 공이 즉시 대답하기를, “그 소행(所行)이 이러한데도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귀신이라 하옵니다.”라고 하니, 사람들이 공의 민첩함에 탄복하였다. 임금이 장차 의금부에 내려 공을 벌하려 하였으나 수상(首相) 허종(許琮)이 힘써 구제하였기 때문에 공을 공주(公州)로 귀양을 보내는 것으로 그쳤다. 이 일로 인하여 공이 강직하다는 평판이 크게 돌았다.


을묘년(연산 원년, 1495년)에는 문과(文科)에 장원(壯元)으로 급제(及第)하여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에 제수되었고, 외직(外職)으로 나가 영안남도 평사(永安南道評事)가 되었다. 그때에 연산군(燕山君)의 정사(政事)가 문란하여 소인배(小人輩)들의 판이 되었다. 사람들이 공을 위태롭게 여겼는데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자 공은 과연 윤필상의 무함(誣陷)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김일손(金馹孫) 등과 함께 화를 당하였으니, 이때 공의 나이는 28세였다. 윤필상은 공에 대한 한(恨)을 그치지 않아서 갑자년에 이르러서는 육욕(戮辱)이 천양(天壤)에까지 미쳤다. 중종(中宗)께서 반정(反正)하자 공의 복관(復官)을 명하였고, 뒤에 아들이 귀하게 되어 이조 참판에 증직되었고 관직도 겸대(兼帶)하게 되었다.


공은 집에서 거처할 때에는 신실(信實)하고 화락(和樂)하였으나 일의 시비(是非)에 대해 논할 때에는 선악(善惡)을 변별(辨別)하여 강개(慷慨)하고 매우 정직하여 회피하는 일이 없었다. 항상 우리의 도(道)인 유학(儒學)을 부식(扶植)하고 이단(異端)을 물리치는 것을 자신의 소임(所任)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그 기절(氣節)과 풍도(風度)를 한 시대에서 모두 우러러보았으나 간인(奸人)들은 이미 눈을 흘기고 틈을 엿보았으니, 마침내 공이 화를 당하게 된 것이었다. 묘소(墓所)는 통진(通津) 상포(霜浦)의 여금산(餘金山)에 있으니 선산(先山)을 따라 간 것이다. 
공이 젊었을 때에 참판 김수손(金首孫)이 대사성이 되어 성균관에서 강론할 때에 공의 사람됨을 남다르게 보아 그 딸로 아내를 삼아주었다.

 

김 부인(金夫人)은 타고난 성품이 효우(孝友)가 있었고 막힘이 없이 통달(通達)하였다. 공이 비명(非命)에 가게 되었음을 애통하게 여겨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여러 차례가 되었다.

1남을 낳았으니 세장(世璋)으로, 공이 화를 당할 때에 나이가 겨우 1살이었다. 부인이 매우 사랑하기는 하였으나 올바르게 가르쳐서 문과(文科)에 등제(登第)하여 현요직(顯要職)을 두루 거친 뒤 관찰사(觀察使)로 마감하였다. 세장은 청백(淸白)하고 근실(勤實)하기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부인의 봉작(封爵)도 이 아들이 귀하게 된 때문이었다.

부인은 40여 년간 영화(榮華)를 누리다가 가정(嘉靖) 무오년에 노환(老患)으로 집에서 사망하니, 향년(享年)이 81세였다. 묘소는 공주(公州) 서촌(西村) 부전(浮田)의 무성산(茂城山) 기슭에 있는 김씨(金氏)의 선영(先塋) 곁에 있다. 관찰사가 일찍이 공의 묘소를 옮겨 합장(合葬)하려고 하였으나 상중(喪中)에 병을 얻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관찰사는 5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로 맏이는 병절교위(秉節校尉) 건(鍵)이요, 다음은 사과(司果) 란(鑾)이요, 다음은 수의부위(修義副尉) 기(錡)요, 다음은 문과(文科) 병조 정랑(兵曹正郎) 갱(鏗)이요, 다음은 문과 승지(承旨) 철(鐵)이며, 딸로 맏이는 한성부 참군(漢城府參軍) 정수후(鄭守厚)에게 출가()하였고, 다음은 종실(宗室) 화릉 정(花陵正) 수혜(秀蕙)에게 출가하였으며, 다음은 현령(縣令) 구운한(具雲翰)에게 출가하였다.


아! 하늘이 뜻을 정하면 능히 사람을 이긴다고 한 것을 공에게서 더욱 징험(徵驗)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공을 화가 미치기 전에 보전하여 정론(正論)을 오래 가게 하고 사림(士林)에게 복이 되게 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하늘이 정하지 않아서 그리된 것일까? 아니면 운수(運數) 소관(所管)이라서 하늘도 어찌할 수 없었단 말인가? 서운할 일이고 통탄할 일이로다.
 

천계(天啓) 5년(인조 3, 1625년) 5월 16일에 세우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도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 예문관 직제학 상서원 정(承政院都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藝文館直提學尙瑞院正) 김상헌(金尙憲)이 글을 짓다.